경주 여행을 계획하시는 여러분!
어디를 갈까 코스를 많이 고민하며 짜고 계실 겁니다. 😁
특히 경주 여행이 두번째 이상인 분이시면
"첨성대도, 동궁과 월지도, 월정교도, 경주월드도, 불국사도 석굴암도 다 가봤으니 갈 데 가 가봤어"
하시겠지만
아마도 그런 분들조차 오늘 소개하는 양동은 안 가본 분들이 더 많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도심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서 그런 것 같아요.)
양동? 하시며 고개를 갸웃하시는 분들. 🙄
조선시대 역사마을, 집성촌 하면 어디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을 가장 먼저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사실 그 세계문화유산에는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라고 등록이 되어 있답니다.
하회마을이 더 유명하니 그냥 곁다리(?)로 추가되어 있나 싶으시겠지만
오히려 규모로만 치면 양동이 한국 최대 규모의 전통마을이고,
국내 알려진 500년 이상 된 반가 10곳 중 4곳 이 여기 양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국내 최다, 하회마을은 1곳)(국내 전반적으로 임진왜란 때 기와집들이 많이 날아가서 남아 있는 집들이 없죠)
물론 그에 따라 문화재도 양동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그에 맞물려 전해 내려오는 정사와 야사들도 많지요.
2021년에는 세계유산의 핵심 정신인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장 잘 구현한 26개 사례 가운데 하나로 뽑히는 영광을 안은 곳이기도 하죠.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동(양동마을은 사실 잘못된 표현입니다. 동이 마을 동(洞)이죠)이 낯선 분들이 많으실 걸로 생각되는데요.
하회마을과 양동을 둘다 다녀온 저는 개인적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의 하회마을 방문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 대표 역사마을은 하회마을이 아닌, 양동이 되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답니다.그 분도 탈춤구경과 (양동과 달리) 평지란 특징 때문에 하회마을로 간 거 아닐까 싶어요
하회마을과는 비교도 안되는 엄청나게 큰 규모와 다양한 고택들, 그에 담긴 역사,
특히 귀에 쏙쏙 들어오는 열정적인 문화관광해설사님의 설명으로, 세계문화유산인 양동의 역사(정사 및 야사), 시대별/지역별 고택의 구조, 각 종가의 당호의 유래, 각 종가의 특징, 양동마을 내 여러 문화유산에 대해서 즐겁게 배우는 하루가 되었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여유롭게 원데이 코스로 잡고 방문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
어지간히 역사에 통달하신 분이 아니라면
문화관광해설사 시간에 맞춰 해설사님의 해설을 듣는 걸을 강력하게 추천드려요.
사실 모르고 보면 그냥 옛날 마을이다 싶지만 설명을 듣고 이해하면서 보면 확실히 깊은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인상 깊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문화관광해설사 해설은 나라에서 운영하므로 무료고, 무료로 듣는게 너무나 죄송할 정도로 저~~~엉말 해설을 완전 잘 해주세요.
심지어 그 때 해설 듣는 사람이 저 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해설해주셔서 넘 감사했답니다.
또한 가능하다면, 마을 도착 후 해설을 듣기 전 마을 입구의 양동마을 문화관에 먼저 들러 예습하시는 것도 좋아요.
(각종 희귀 문화재도 볼 수 있습니다)
양동은 주요 관광지와 다소 떨어져 있긴 하지만,
주차장이 잘 되어 있고요, 대중교통으로는 버스로 방문하시면 됩니다! (203번, 252번)
택시는 가는 건 가능한데, 오는 건 안 잡힐 것 같네요.
입장료는 아래 사진을 참고해 주세요!
저는 10시 30분 쯤 도착해서, 문화재해설사의 집에 들러 11시 해설을 요청드리고 먼저 한 바퀴 둘러봤어요.
둘러보며 좌우로 쓱 눈으로 스캐닝 한 결과
'생각보다 안 크네? 한두시간이면 금방 보겠네 흠...'
라고 생각했는데...
해설사님이 보여주신 아래 지도를 보니
제가 해설 전 먼저 30분 둘러 본 건 한 조각의 반의 반 정도 보고 있었던 거였어요.
해설사님이 하루 정도 빼서 천천히 둘러보는 게 좋을 거라고 하셨는데,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아무튼 해설사님이 '관광'이 아닌 '관람'을 하길 당부하신다는 말로 동행 해설을 시작해주셨어요.
이 양동은 안강평야 앞 설창산 산줄기에 처가입향(妻家入鄕)으로 들어왔던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가 조선 전기를 지나 유교의 영향으로 집성촌으로 발달하게 된 국내 최대의 역사마을입니다.
보물인 무첨당, 향다, 관가정을 포함하여 문화재 수가 단일 마을로는 제일 많은 20개쯤 된다 하셨습니다.
당장 임진왜란을 겪고 살아남은(?) 500년 반가 10개 중 4개가 양동에 있습니다.
여주 이씨, 경주 손씨 두 문중이 선의의(?) 경쟁을 치열하게 해서
서당만 3개, 정자만 10개가 있고,
조선시대 급제자 116명, 문과 대과 급제자를 26명을 배출했다고 합니다.
초가집이 농사짓는 노비가 사는 곳이고, 625전에는 두 배이상으로 집이 많았다고 합니다.
집들의 기본 구조는 영남지방에서 흔히 보이는 ㅁ자형이거나 튼 ㅁ자형이라고 하셨답니다.
마을의 입구의 경우에는 충(忠)효(孝)열(烈)을 기리는 비석/비각이 있었는데요.
(보통 이런 비석/비각은 마을의 자랑거리이므로 마을입구에 위치하다 합니다.)
이 날 비각 근방이 공사중이라 찍지 못했지만
마을 입구에 1체 2위, 즉 두 명을 모신 비각이 있답니다. 단 비석은 하나에만 있답니다.
말인 즉슨, 2개 비각이 있고 그 중 1개만 비석만 있는데,
비각은 병자호란때 이천 쌍봉전투에서 죽은 손종노와 그의 사노비 억부, 2명을 기리는 비각이라고 합니다.
손씨 후손들이 비석을 내려달라 상소를 계속 올렸지만 중간에서 자꾸 끊기는 컷 바람에 계속 못받다가
5대손까지 가서 정조 때 겨우겨우 받아낼 때 사노비인 억부 몫의 비각도 내려왔다 합니다.
하지만 조선시대라 신분을 가려 비석은 주인인 손종노만 받은 걸로... 그놈의신분제
그 다음 둘러 본 관가정은 회재 이언적의 스승이자 외삼촌인 청백리 손중돈의 집으로 이 곳에서 기본적인 조선시대 관가의 구조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는데요.
할아버지들께서 사랑채에서 담소중이셔서 조심조심 조용히 설명해주셨답니다.
문화관광해설사님의 말씀으로는
경상도는 동고서저의 지형/기후의 영향 및 주리론의 영향으로 집의 형태가 ㅁ자,
전라도는 집의 형태가 ㄱ/ㄷ 자 형태의 개방형이며,
조선시대 반가에서는 당호 현판이 있는 곳이 제일 중요한 곳이라 하셨습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바깥쪽 건물인 사랑채(남자주인님방), 안쪽 건물이 안채(안방마님방)가 있다고 하셨는데요.
일반적인 반가에서 중요행사 및 교육은 사랑채의 사랑마루에서 진행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가(私家)에서 단독으로 단청이 되어 있는 건물은 보통 조상을 숭배하는 사당이나 영정이 있는 영당인데
보통 좌묘로 집의 좌측(집주인기준)에 위치해있다고 합니다.
이 관가정에는 사당은 없고, 보물인 입향조 손소의 영정이 보관되어 있는 영당이 있었어요. (무슨 일개 반가에서 보물이 쏟아지는지)
사실, 양동의 입향조인 손소의 영정은 응당 종가인 송첨 종택(서백당)에 있어야 하는데, 종가가 아닌 관가정에 있는 특이한 케이스인데요.
손소의 장남이 일찍 죽어서 차남인 손중돈이 여기서 400년 정도 종가노릇하다 송첨 종택(서백당)에 사당을 지으면서 현판과 신주를 송첨 저택(서백당)으로 넘겼다 합니다.
여기서 킬포인트는 아녀자만 다니는 협문이 영당 앞을 지나는 쪽으로 위치해 있었는데요.
보통은 그러지 않도록 협문은 반대편에 있는데, 그 이유는...
....영당을보고잊지말고제사날짜잘챙기라고그래놨다는썰이유력하다합니다...조선시대시집살이ㄷㄷ
첫 대표 보물 건물로 관가정을 둘러보고 나서
이동하면서 '정'은 낮만 쓰는 용도 '정사'는 숙박겸용 건물을 의미한다고도 말씀해주시는 등
조선시대 반가 가옥을 이해할 기초지식을 계속 설명해주셨어요.
그 다음으로 안내된 곳은 무첨당이었는데요. 역시 보물로 회재 이언적을 배출한 여주 이씨의 종가입니다.
무첨당의 뜻은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란 그 뜻이 맞습니다.
무첨당 ㄷ + ㅣ 의 튼 ㅁ 자 형태로 되어 있었고,
행랑채라고 부르는 하인집이 있는데, 높이가 낮다고 설명해주셨어요.
관혼상제 중 제가 건물 입구에서 이루어지고, 아직도 제사가 이루어 진다고 하셨어요.
사당이 높이 위치해 있었는데, 사당으로 가는 계단이 꺾여져 있는 이유는 옷차림정비를 하고 조상님을 뵙기 위해서라는 등 재미있는 설명을 계속 해주셨어요.
해설은 여기까지 했고, (너무 넓어서, 다만, 송첨종택(서백당)에 관련한 간단한 설명을 미리 해주셨어요)
장장 1.66666 시간의 해설을 마쳐주시고 해설사님은 돌아가셨습니다.
(리액션때문에 본인도 모르게 길게 설명을 더해주셨다고 작전대로)
저 혼자 다음 목적지(?)인 서백당으로 떠나기로 했어요.
드디어 안내표지판을 따라 걷고 또 걸어 송첨종택에 도착했어요.
송첨종택은 서백당이라 이름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데요.
원래 서인백당으로 하루에 참을 인을 백번을 하란 뜻입니다.
이 서백당 현판이 있는 사랑채 계단에서는 성주봉이 보인답니다.
마을을 더 둘러봅니다.
향단을 들른 뒤 내려와서 마을을 한 번 더 뒤돌아봅니다.
참 마을 입구에 마을 전시관 (양동마을 문화관)도 있으니 한 번 둘러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각 건물의 상세한 설명과 곁들여, 무려 보물인 지정조격과 국보인 통감속편을 (내부전시품은 복제품이지만) 등의 문화재를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알찬 랜선 여행 되셨나요?
다음 여행지, 국내 최대 역사마을인 양동으로 떠나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강력 추천 드립니다.